일의 방식에 관해: 절차주의와 조직의 경직

절차는 늘어나는데, 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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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8, 2026
일의 방식에 관해: 절차주의와 조직의 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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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인 업무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절차 하나를 추가하는 일은 간단하다. 앞으로 이 일을 할 때는 보고서를 먼저 작성하라거나, 특정 부서를 거치라거나, 자신에게 최종 확인을 받으라고 지시하면 된다.
그 한마디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사람들의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자료를 작성하고, 다른 부서에 배경을 설명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수정한 뒤 다시 보고해야 한다. 그동안 외부에서 들어온 제안은 멈춰 있고, 상대방에게 회신해야 할 시간은 지나간다.
절차를 만드는 사람의 몇 마디가 여러 사람의 하루를 소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비용이 거의 계산되지 않는 조직의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정리해 보았다.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절차를 만든다

절차가 많고, 보고가 자주 올라오며, 중요한 일이 모두 자신을 거쳐야 회사가 제대로 운영된다고 생각하는 리더 유형. 회사라면 뭔가 체계가 있어야 하고, 직원들이 그 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체계로 무엇을 해결하려는지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실수를 방지하려는 것인지, 어떤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것인지, 실무자와 리더가 각각 어디까지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회사인데 회사처럼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관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설계하려면 업에 대한 이해와 운영 철학이 필요하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은 생략해도 되는지 판단할 기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 없이 만들어진 절차는 추가하기는 쉽다. 반면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줄이거나 없애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가 불분명하니,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평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작은 사항은 통제하면서 사람의 시간은 계산하지 않는다

가령 실무자 단에서의 사사로운 업무, 외부 이동건, 미팅건 등에 대해 과하게 모든 논의 사항을 기록에 남기길 원하며 미팅 상대방의 이력사항에 가까운 정보를 요구하는 것.
실무자의 사사로운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면서, 내부에서 소모하는 노동력은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는 자원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외부 파트너와의 관계 형성을 위한 가벼운 미팅에서도 서류를 준비하고, 증빙 누락 여부를 확인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다시 요청해야 한다. 이 과정에도 비용이 든다. 다만 별도의 청구서가 발행되지 않을 뿐이다.
 

업무가 모두 자신을 거치게 해놓고, 정작 감당하지 못한다

업무의 성격과 중요도를 막론하고 외부 파트너와의 교신에 리더를 반드시 공유하고, 최종 결론은 자신을 거치도록 하는 유형.
업무 경로에 부서 하나, 사람 하나가 추가되면 그만큼 해야 할 일이 생긴다. 담당자는 이미 알고 있는 맥락을 다시 설명해야 하고, 전달받은 사람은 이를 파악해야 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확인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추가한 경로가 실제로 어떤 판단을 개선하는지에 대한 검토는 찾기 어렵다. 대신 일이 리더에게 계속 모일뿐.
모든 교신을 공유받고, 주요 업무를 보고받고, 최종 결론을 직접 내리겠다고 하면 자신이 검토하고 응답해야 할 일도 그만큼 늘어난다. 직원 여러 명이 진행하는 일을 한 사람에게 모아놓았으니, 그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조직 전체의 업무 속도를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경우 대부분 리더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절차를 감당하지 못하는 점이다.
일이 몰리면 “그런 건 알아서 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담당자가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 정리되는 것도, 기존 절차가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자신이 처리하기 어려우니 알아서 진행하라는 말이 주어질 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절차를 지키지 않는다는 문책이 돌아온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은 직원이 다음번에도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을까. 알아서 처리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면, 확인을 기다리는 편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된다.
그렇게 업무는 더 느려지고, 리더에게 확인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 하지만 자신이 설계한 구조가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에 만든 절차가 이번 달에는 통째로 바뀐다

절차가 계속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은 익혀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런데 기껏 만들어놓은 절차 자체가 통째로 바뀌는 일도 빈번하다. 지난달에 배운 업무 방식이 이번 달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식이다.
직원들은 새 방식을 다시 배우고, 기존 방식으로 진행하던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이미 작성한 자료도 다시 손봐야 한다. 수많은 절차를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그 절차들이 계속 교체되니 경험이 쌓여도 업무가 익숙해지기 어렵다.
변경에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새로운 방식을 익혀 안정적으로 일하기도 전에 또 다른 방식이 등장한다.
절차를 숙지하는 속도보다 절차가 추가되고 교체되는 속도가 빠른 것이다. 직원들이 전체 프로세스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를 조직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전에 같은 일을 해본 경험조차 충분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다시 처리하려면 지금도 같은 방식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결국 직원들은 리더에게 또 물어야 한다. 리더에게 몰리는 확인 요청은 늘어나고, 리더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절차 준수 여부는 계속 직원 개인의 책임으로 남는다.
직원들에게 절차를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그 절차를 익히고 안정적으로 일할 조건은 무너뜨리는 것이다.
 

보고는 쌓이는데 리더의 업무 이해는 축적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더 답답한 것은 리더의 업무 이해가 좀처럼 축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직에 몸담은 지 몇 년이 지나도 리더라면 알고 있어야 할 기본 업무를 매번 하급자에게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결정한다. 같은 배경을 설명하고, 이전에 보고한 내용을 다시 전달하고, 이번 판단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부터 복기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보고를 받았는데도 다음 의사결정이 더 빨라지지 않는다. 보고서와 메일은 쌓였지만, 그것이 리더의 머릿속에서 업무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실무자는 매번 판단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처음부터 다시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사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이미 공유한 기본 내용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쓰게된다.
절차를 설계하려면 실제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어떤 정보가 먼저 필요한지, 어느 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지, 어떤 결정은 현장에서 바로 내릴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주요 의사결정의 경유지가 되면, 절차는 실제 업무와 어긋나고 판단은 계속 지연된다.
그리고 이것이 대면 보고 전에 예비 보고, 요약 보고를 먼저 필수로 하라던지, 산업별 카테고리 맵을 그려보라던지 다양한 형태로 절차와 중복 작업만 늘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추가하면 자신이 알아야 할 것들이 한눈에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한데, 지적 게으름이 있는 한 리더가 업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공부와 판단은 여전히 남아 있을 뿐이다.
요구한 사전 자료로 어떤 의사결정을 하려는지 분명하지 않으니 실무자의 자료 작성도 모호해진다. 리더의 업에 대한 기본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다시 이런 자료를 접하니, 더더욱 리더 스스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한편으로 이런 절차를 추가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런 내부 관리 절차 자체를 갖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회사가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자신도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만들 수 있으니까.
 

결정할 준비를 하다가 결정할 시간을 놓친다

절차가 실제 업무와 어긋난다는 사실은 긴급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하는 제안서가 있다고 하자. 우선 결정해야 할 것은 이번 제안에 참여할지, 제출을 준비할지 여부다. 그 결정을 내려야 남은 시간에 자료를 작성하고, 상대방에게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고, 내부 역할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그 결정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예비 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련 배경을 정리하고, 이메일로 서면보고를 먼저 해야 한다. 그 순서를 모두 거친 다음에야 대면으로 논의할 수 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 중 1~2일이 지나가는 것이다.
제안서를 제출할지 결정하기도 전에, 제안서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상당 부분 써버리는 것이다. 기존 절차를 순서대로 지키는 동안 먼저 내려야 할 결정이 뒤로 밀리고, 실행할 시간도 함께 줄어든다.
상황이 급하면 지금 결정해야 할 사항과 이후 보완할 사항을 구분해야 한다. 현재 확보한 정보로 우선 방향을 정하고, 필요한 자료는 실행 과정에서 채워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준비가 끝나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방식은 그 구분 자체를 막는다.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고도 정작 일을 성사시킬 타이밍을 놓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결정을 돕기 위해 써야 할 시간이, 결정을 시작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는 데 소모되고 있는것.
 

그래도 회사가 파악되지 않으니 전 직원에게 일일보고를 시킨다

이 정도면 자신이 만들어놓은 절차와 판단 방식을 돌아볼 만도 하다.
그러나 또 다른 보고 요구가 더해진다 : 전 직원에게 일일보고를 시키는 것이다.
이미 여러 경로로 보고받고, 외부 교신도 공유받고, 중요한 결론은 자신을 거치도록 해놓았다. 그런데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하니, 직원들이 매일 무엇을 했는지 더 자주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일보고로 완료가 되지 않는다.
메일로 재정리해서 보내고, 대면으로 다시 설명하는 중복이 일어난다. 전달 수단이 추가될 때마다 실무자의 작업도 추가된다.
업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니 보고를 더 요구하고, 보고와 승인할 일이 몰리니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그렇게 업무 흐름을 놓치니 다시 더 많은 보고를 요구한다.
그 순환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이 계속 시간을 내야 하는 것이다.
 

내부 절차의 비용은 외부 파트너도 부담한다

이 모든 부담은 조직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부 파트너가 경험하는 이러한 조직의 모습은 단순하다: 담당자에게 질문해도 답변이 늦는다.
어떤 제안을 해도 명확한 답을 받기 어렵다. 담당자와 이야기가 잘 진행되는 것 같다가도 내부 확인이 필요하다며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에서는 절차를 지키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함께 일하기 어려운 조직으로 보이게 된다.
제안을 주고받을 때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담당자가 실무적인 사항도 결정해주지 못하면 상대방도 다음 일을 계획하기 어렵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더 빠르게 소통하고 결정할 수 있는 다른 파트너를 찾게 된다.
그렇게 조직은 느려지고, 외부에서 보기에는 폐쇄적인 조직이 된다.
여기서 잃는 것은 당장의 협업 기회만이 아니다.
실무자가 외부 파트너와 직접 대화하며 일을 진행하면 문서에 적히지 않은 정보를 얻게 된다. 상대가 왜 지금 이 제안을 했는지,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어디까지 조정할 수 있는지, 겉으로 드러난 설명과 현장의 사정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다.
작은 질문에 빠르게 답하고, 실무적인 문제를 함께 풀고, 다음 단계를 바로 정하는 과정에서 신뢰도 쌓인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 상대방도 더 깊은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기회를 먼저 가져온다.
그런데 매번 내부로 돌아와 보고하고 기다려야 한다면 대화의 흐름이 끊긴다. 담당자가 할 수 있는 말이 계속 “확인 후 말씀드리겠습니다”에 머물면 관계가 깊어지기 어렵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외부와 접촉하면서도, 그 접촉을 통해 배우고 판단하는 범위는 좁아지는 것이다. 그만큼 현장의 정보와 암묵지가 조직 안에 축적될 기회도 줄어든다.
 

절차를 추가한 사람은 그 결과에 책임지는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 같은 배경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시간, 변경된 절차를 다시 배우는 시간,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 그 사이 사라진 기회와 멀어진 파트너, 얻지 못한 정보는 어디에 기록되는가.
위에서 다룬 스타일의 절차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손실을 돌아보는 과정이 없다는 점이다. 절차를 만드는 행위는 계속되지만, 그 절차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냈는지 평가하고 줄이거나 폐기하는 일은 없다.
리더가 해야 할 일에는 업무를 이해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구성원이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하게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 자신에게 모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면 권한과 절차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자신이 내린 지시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 역할이 수행되지 않는 동안 직원들은 회사가 돌아가도록 일하는 것에 더해, 리더가 생각하는 회사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일까지 해야 한다.
절차 하나를 추가하는 데 드는 리더의 시간은 짧다. 그 절차를 유지하고, 변경에 적응하고, 모순을 수습하는 데 드는 직원들의 시간은 계속 늘어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쓰는 동안, 회사가 실제로 해야 할 일들은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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