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업무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조직은 겉보기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러다 보니 구성원의 심리적인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리더의 심리는 조직의 방향성을 크게 좌우한다.
일상 생활에서나 조직에서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낮은 자존감이 나르시즘이라는 형태로 어긋날 때 문제가 시작된다. 특히 그 사람이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상황은 대부분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리더가 스스로의 내면을 다루지 못하면 조직은 곧바로 ‘일 잘하는 법’을 잃고 ‘리더를 기분좋게 하는 법’을 학습하게 마련이다.
1) 친한 척의 가면 아래, 경계와 질투
낮은 자존감의 사례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사소하고 쪼잔하지만, 작은 사례부터 들어보면 타인에 대한 시샘이 있다.
- “윤혁이(가명), 내가 잘 아는 윤혁이”
유난히 친한 척을 하던, 이미 독립해 업계에서 자기 자리를 만든 후배. 겉으로는 반가움과 응원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 경계와 질투를 보인다.
막상 이 후배와 회사 대 회사로 협업 기회가 생겼을 때, 평소의 태도는 사라지고 “우리랑 업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생각 중이니 아직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라며 거리를 둔다.
결국 관계는 애매해지고, 협업의 타이밍은 흐려진다. 이는 회사 차원에서 명확히 비효율이다. 협업을 ‘가능성’이 아니라 ‘위협’으로 인식하면, 결정이 늦어지고 관계는 무의미한 정중함 속에서 식어버린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업무상 평소 영업망을 꼭 확보해 둬야 하는 가까운 협업처에 전혀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어린 후배가 미팅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듣자 노골적인 질투와 시기를 드러낸다.
까마득한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본인이 게을리하던 영역에 타인이 들어오는 순간, 경계심이 극대화되는 패턴이다.
2) 성공한 이 앞에서의 급격한 태도 변화
평소 한 기업의 총수를 두고 “가족 배경이 좋아서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그저 사업이 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저런 기업은 사업적으로 흥해서는/상장해서는 안 된다” 같은 말을 서슴지 않는다. 질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발화이다.
그러나 막상 중요한 자리에서 그 총수를 만나자, 태도는 180도 바뀐다. 온갖 친한 척을 하며 한 마디라도 더 말을 붙이려 하고, 가까운 사람인 듯 연출하려 애쓴다.
더 문제인 것은, 그렇게까지 신경 쓰면서도 그 기업이 왜 잘됐는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관계’를 학습과 이해의 통로가 아니라, 자기 존재감을 부풀리는 무대 장치로 사용할 뿐이다.
3) 자존감은 ‘일’이 아니라 ‘포장’에서 충전
한편 자신을 채우는 일—각종 강연, 그리고 SNS에 한껏 포장된 글을 올리는 것—은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SNS용 글을 다듬고 올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루틴하게 사용한다.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업무의 실체를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기 연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때이다.
일의 진도가 막힐 때도, 내부 시스템이 허술할 때도, 바깥에 비칠 ‘나’의 이미지가 우선순위가 되면 조직은 필연적으로 비틀린다.
4) 따라서 스포트라이트는 반드시 자신이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과 자신이 가까워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주변 구성원들이 별도로 직접 연락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 곁에서 내려지는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자신이 받아야만 한다는 듯. 이에 직원들을 단속하고, 혹시라도 직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면 극대노한다.
이 집착은 업계 내 유명인, 대형 기관 대표와 어떻게든 엮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얼핏 보면 이것이 영업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 상대 회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내가 돋보이는 것”이 속내가 되면, 관계는 결국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대형 기관 대표를 먼 곳까지 굳이 초청하겠다며 무리수를 두고, 그걸 준비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닥달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무산된다. 남은 건 피로와 허탈감, 그리고 “왜 이걸 했지?”라는 질문뿐.
5) ‘있어 보이는 정보’만 급히 주워 담는 리더
이렇게 소위 ‘있어 보이는 것’만 좋아하다 보니, 회사의 주요 업무나 정보 숙지도 그 위주로 한다.
문제는 업의 특성상, 평소 주목받지 못하던 분야나 거래처(투자처)도 어느 날 갑자기 외부의 시선을 한 번에 받고 유망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회사정보 숙지는 리더의 의무지만,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어도 하지 않다가 특정 거래처/투자처가 외부의 주목을 받으면 그제야 부랴부랴 직원을 닥달하며 머릿속에 우겨넣으려 한다. 곧 비춰질 회사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이 모두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시간 내 머릿속에 마법처럼 정보를 입력해줄 자료”가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 책임은 곧장 직원에게 돌아간다. 본인의 부족한 역량 탓임에도 “직원이 게을러서”로 결론이 난다.
평소의 무관심은 꼭 위기 때 ‘분노’로 환전된다.
6) 결국 기본을 무너뜨리는 사고로 이어짐: NDA 사건
영향력 있는 누군가와 접점이 있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알아야 할 정보는 평소 관심이 없으니 전혀 숙지하지 못한다. 이 조합은 위험하다. 이를테면 거래처의 NDA 사항 같은 중요 정보를 공개 석상에서 발언하는 기본이 안 된 행동도 저지르게 된다.
예를 들어 협력사가 외부 기업에 피인수 추진되다가 무산된 내부 기밀을, 전시회장에서 협력사 일반 직원에게 발설한다. 상대방을 협력사 임원으로 착각하고*(평소 일에 관심이 없으니 임원이 정확히 누군지 모른다) 전시회장 부스에서 “지난번 M&A 무산건은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와 같은 멘트를 발설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를 통해 “나는 중요한 이슈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우쭐거림을 얻고 싶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협력사 직원들 사이 큰 파문이 일고, 협력사 대표는 내부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된다. 회사 신뢰도를 자폭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사건이다. ‘있어 보임’의 욕망은, 신뢰라는 자산을 한 번에 태워버릴 수 있다.
7) 황제 콤플렉스: 인간 단축키
앞서 다룬 여러 요소들이 모여 자신을 왕, 아니 황제 그 이상으로 생각한다. 직원은 “수족 그 이하”로 다뤄진다.
예컨대 특정 포맷 파일의 뷰어를 설치하기 싫어서, 다른 포맷으로 바꿔 다시 보내라 한다. 자기가 모르겠으니 작성자는 반드시 온갖 포맷으로 변환해 같은 내용 파일을 여러 개 보내야 한다는 식.
컴퓨터 단축키를 누르면 반복 업무가 자동으로 실행되듯, 소위 ‘인간 단축키’의 탄생이다.
- “(그저 본인이 한꺼번에 보고 싶어서) pdf 1번과 2번을 병합하시오.”
- “지금까지 메일 쓰레드로 보냈던 파일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서 나에게 제출하시오.”
- “이전 메일로 보고한 내용을 첨부 파일 양식으로 바꿔 보내시오.”
- “(어디서 가져온지 모르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인터넷에서 이 이미지 원본을 찾으시오.”
또 제3자와 약속을 정하다가, 맥락상 본인이 스케줄 입력하면 되는 일을 직원에게 “스케줄 픽스하시오”라며 비서 부리듯 지시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당장은 편해 보이지만, 조직 전체로 보면 사람의 시간을 파일 변환과 정리 노동으로 태우는 구조이다. 핵심 업무는 늘 뒤로 밀린다.
8) 경계선은 없다: 물건을 뒤적이고, 사람을 시험대에 올린다
직원을 하수인 이하로 보니, 직원의 물건을 마음대로 뒤적거리는 행동도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직원들을 자신의 시험대—일종의 사회 실험—에 올린 뒤 반응을 보는 걸 즐긴다.
예컨대 특정 업무에 대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음에도)각자의 의견을 “절대 타인에게 공유하지 말고” 제출하라고 지시한다. 그 뒤에는 그 의견들을 모아 평론회를 연다.
또 기한을 주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왜 아무도 내지 않느냐, 나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며 압박하기도 한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아직도 제출하지 않아 다른 이들의 수고가 빛바래고 있다. 당사자는 각성하시오.”라며 특정인을 사냥하듯 권력을 휘두른다. 전체 회의나 공개 석상에서 특정인을 면박 주는 행위는 그 확대 버전이다.
‘업무 관리’와 ‘권력 놀이’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순간, 팀의 속도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입을 닫는다.
9) 직원들의 생활을 “내 말 한마디로” 움직이고 싶다
이런 리더는 결국 권력을 통해 근무 시간, 근무 방식, 행동 반경 등을 “새로운 회사 규정”이라는 명목으로 시시각각 조정하고, 직원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제약받는 모습을 확인한다.
그리고 직원들의 행동이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걸 즐긴다.
이건 운영의 안정성을 깨뜨리기 마련이다. 규정이 원칙이 아니라 기분의 확장판이 되면, 사람들은 일을 ‘잘’ 하는 대신 ‘안 걸리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10) 워크샵과 반성문: ‘준비물’가져오기
워크샵 등 회사의 정기 이벤트에서도 나르시즘적 성향이 묻어난다. 이는 일종의 집단 고백 시간처럼 변질된다.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업무 내역을 재정리해(이미 그동안 많이 보고했음에도)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 그 안에는 주로 자기비판과 반성이 강제된다. 직원들이 “저는 이런 게 부족하고 잘못입니다”를 읊조리는 걸 모아보는 구조였다.
워크샵에서는 이런 행위가 극대화 된다. 팀별, 개인별로 일종의 반성회가 열리고 “부족한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만족하는 듯하다. 각자가 내밀 혼날 점을 ‘준비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처음에는 활동 코스, 식사 메뉴, 저녁 시간 게임 활동 같은 아이디어를 요구하더니, 불참자가 늘어나자 “중요한 업무를 위해 워크샵에 가는 것”이라며 말이 바뀐다. 그리고 이윽고 “불참 사유서”를 내라며 권력 행사를 한다.
이 흐름은 너무 선명하다. 행사의 목적이 팀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결국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완성하는 쪽인 것이다.
11) 평가라는 이름의 협박, 태도 평가
이러한 리더는 이와 연관해 평가를 빌미로 직원들에게 무언의 협박을 가하기도 한다.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태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그의 기분이 최우선인 구조이다.
이에 직원들은 기준을 따라 성장하는 게 아니라, 기분을 눈치 보며 생존한다.
12) 우월한 위치를 만들고 싶었던 협상
또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나에게 잘하면 이것을 주겠다”는 구도를 만들려 애쓰곤 한다. 그것이 사내에서의 관계이든, 사외에서의 관계이든.
하지만 이러한 리더가 쥐고 있는 것들은 대개 상대방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쓸모가 없다. 그래서 그 시도는 늘 수포로 돌아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런 것이다. 상대방은 이미 거래를 끊은 거래처인데, 그 거래처 대표의 못난 행동을 자신은 알고 있다며 ‘고급정보’인 양 포장한다. 또 이런 착각을 기반으로 “내가 원하면 누구나 만나고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그 결과 실책이 지속적으로 회사에 누적된다.
13) 교육으로 위장된 콤플렉스
또다른 문제는 이런 리더가 콤플렉스가 있을때 발생한다.
재미있는 예로 이런 리더가 의외로 말을 잘 못하고 발표를 잘 못해, 이것에 콤플렉스가 있는 경우. 이것을 그대로 직원들에게 투영할 때 문제가 생긴다. 본인이 그럴 역량이 아닐텐데도 직원들을 교육하려 들며 과한 행동을 하는 식이다. 발표와 화법 관련 가엽운 수준의 소위 ‘릴스’를 가져와 직원들에게 “학습하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결국 무엇이 문제였는가
낮은 자존감은 결국 스스로를 우월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방어 심리를 가져오고, 나르시즘화 된다.
그러나 우월함은 실력과 신뢰에서 나오지, 과시에서 나오지 않는다. 낮은 자존감은 두려움을 만들 뿐이다. 이 두려움은 통제를 낳고, 통제는 관계를 망친다.
건강한 리더십으로 성장하려면
- 경쟁 대신 학습
후배와 주변인의 성장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왜 성장했는지 분석하는것이 낫다.
- 스포트라이트보다 신뢰
공개적 과시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만든다. NDA 한 줄을 지키는 태도가 수십 번의 강연보다 가치 있다.
- 통제보다 위임
직원은 인간 단축키가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고, 직원은 더 큰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 평가보다 성장 설계
반성문을 모으는 조직은 위축된다. 개선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조직은 성장한다.
- 우월함이 아니라 유용함
상대보다 위에 서려 하지 말고, 상대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려 해야 한다. 협상은 지배 구조가 아니라 가치 교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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